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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77일 차 6월 9일 (화) - 승압제 사용 시작


늦잠 자는 바람에 병원에 가지 못했다. 3월 25일 이후로 연수 갔던 날 제외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에게 갔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가지 못 했다.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투석 3시간 하고 나왔는데 맥박이 150까지 올랐단다. 과장이 좀 있다가 올 것이고 계속 그렇게 빨리 뛰면 약으로 조절한다고 했단다. 이젠 투석도 받기 어려울 만큼 기력이 없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다.


18:40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라면 전화 올 시간이 아닌데 전화가 와서 불길했다. 엄마가 고비라서 볼 사람 있으면 오늘까지 와서 보라고 했단다. 운행 마쳐놓고 병원으로 향했다. 


19:00

병원에 오니 누나가 입구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나는 침착하게 손을 씻고 엄마에게 향했다. 못 보던 기계가 추가되어 있다. 맥박이 140~150으로 매우 빠르고 혈압이 100/60 정도로 낮다. 원래 혈압이 더 떨어져서 잘 안 올랐는데 승압제를 기계 두 개로 넣어주고 있어 그나마 오른 거란다. 승압제를 쓰면 맥박이 빨리 뛰는데 그렇다고 맥박 때문에 승압제를 쓰지 않으면 저혈압으로 쇼크가 올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기나긴 시간 동안 이제 대장과 소장이 거의 아물어 희망이 생기나 싶었는데 이 병원! 어찌 이리도 준 것을 잘도 뺏어 가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의식을 완전히 잃었다. 아무리 부르고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 간호사 말로는 소변이 나오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단다. 투석기가 무리하게 돌아가서 그런가? 어제까지만 해도 과장이 희망 있게 얘기했었는데 하루 사이 이렇게 되니 허망하다.


누나가 계속해서 울먹이며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나도 참으로 많은 말이 떠오르고 하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내일 낮에 올게…."라고 늘 하던 말만 하고 병원을 나왔다.


엄마가 처음 입원하던 날이 생각난다. 첫 수술 끝나고 며칠간은 괜찮았는데 문합부 누출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하루하루 시들어 갔다. 과장이 별것 아닌 것처럼 나을 수 있을 것처럼 자신감을 보였던 것이 원망스럽다. 엄마가 새벽에 내게 전화해 응급실로 향할 때 입원할지 모른다고 칫솔이랑 수건 챙길 때 아프다면서 그런 거 챙기고 있느냐며 짜증 부렸는데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까지 오게 되다니…. 인간은 누구나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한평생 마음고생만 하다가 가시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고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가신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 빌어먹을 인공호흡기가 꼭 필요했던 걸까….


누나가 엄마에게 아프지는 않으냐고 말할 때 제발 그렇기를 바랄 뿐이었다. 엄마 가시는 길에 고통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내일이 밝았을 때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엄마가 기적적으로 눈도 떠 주기를 간절히 기도 한다.






입원 78일 차 6월 10일 (수) - 자가 호흡 중단


12:00

마음이 조급하다. 엄마의 상태가 걱정된다. 혈압이 조금 오르고 맥박이 조금 떨어져서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 과장이 와서 면담하는데 뾰족한 수도 없어 보이고 수치를 또 설명하는데 이제 더는 그 말이 들리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그가 아무리 뭐라 말한들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과장이 할 얘기 다 하고도 우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나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희망적인 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기다려도 숫자 가지고 설명하는 기계적인 말뿐이다.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누나가 엄마 귀에 대고 조카 생일이라고 얘기했다. 평소라면 잊지 않았을 텐데 정신없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18:29

불길하게 누나가 또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다시 위독하다고 한다. 어제는 승압제 두 개를 썼고 오늘 낮에는 줄여서 하나를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세 개를 투입하는데도 혈압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과장도 계속 자리를 지키며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승압제를 쓰면 환자도 고통스럽고 장시간 쓰면 손발이 괴사한다는 등 무서운 부작용이 많았다. 가망이 없다고 보이면 이것은 환자에게 고통이지 않을까 싶다. 누나에게 승압제 그만 쓰고 편히 보내드리자고 했다. 


23:00

일 마치고 병원에 도착했다. 과장이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 맥박 95, 혈압 95/43, 호흡수 20! 혈압은 계속 오르지 않고 소변 통은 텅 비어있다. 엄마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끝내 사랑한다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그동안 흐르지 않았던 눈물도 터져버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결이 생일이라고 말해줬다. 손녀 생일은 넘겨야 할 테니 말이다.


주변의 기계들이 너도나도 비상등을 켜며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상태가 수시로 급변하는 상황이다. 그에 비해 호흡은 일정한 듯해서 과장에게 물으니 자가 호흡이 없고 기계로 숨을 쉬고 있다고 했다. 실컷 울고 나니 누나가 왔다. 과장이 집이 가까우니 가 있으란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꽂을 때부터 줄곧 손을 묶어 놨었는데, 누나가 풀어주고 나왔다. 엄마가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통스러워 하는 듯해서 손을 꼭 잡으니 또 눈물이 났다. 손가락 끝이 부풀어 있고 손톱은 말렸으며 피부는 딱딱해져 엉망이다. 손을 잡으며 손가락을 바라보려는데 눈물 때문에 흐려서 보이질 않았다.


마지막까지 끝내 한마디 하지 못하고 간다는 것이 가슴에 사무친다. 나는 나중에 이 의사에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온갖 부작용 겪으며 힘들게 가게 한 것을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다. 40분쯤 있었을까 엄마는 더 움직이지 않고 숫자들도 큰 변화가 없다. 내일 다시 면회시간에 만날 수 있기만을 바라며 병원을 나왔다.






입원 79일 차 6월 11일 (목)


12:00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가 막 투석을 받고 내려왔다. 간호사 말로는 3시간 받았다는데 뒤이어 들어온 과장 말로는 2시간이라 한다. 서로 말이 달라서야….


엄마의 상태는 수치상은 어제보다 안정적이다. 승압제를 또 3개를 꽂았는데 하나당 일반적으로 쓰는 양의 네 배라고 했다. 그렇다면 합쳐서 열두 배라는 말인데… 잔인했다. 하지만 그리하지 않으면 저혈압 쇼크사할 것이니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의식도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저 바라만 보다 나왔다.


병원을 나오면서 장례식장에 들러 상담을 받았다. 예전에 아빠 장례 치를 때 기억이 떠올랐고 아마도 같은 호실을 쓰게 될 것 같다. 불필요한 허례허식은 삼가고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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