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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전하는말

죽음의 기로에선 이웃집 아주머니

by 대류 2005. 8. 22.

어릴 적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친구, 같은 또래의 자식을 키우고 한 동네 사는 만큼 어머니들끼리도 친구였다. 어릴 적 꼭 서로 결혼시킨다며 놀리고 했었다.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있는 아직도 두 분은 친구이고, 1년 전 우리는 옆집으로 이사 와서 2층 베란다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시기도 한다. 집 대문이 잠겨있을 때 나는 가끔 언제나 문이 열려 있는 그 집을 통해 담을 넘기도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그 집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암 투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수술을 받으신 아주머니가 병원생활이 갑갑하다고 집에 오셨다. 


바로 엊그제만 하더라도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드리곤 했는데…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이, 기운 없이 방에 누워만 계신다.


아까 낮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낯익은 번호라 냉큼 받았는데 옆집 아주머니였다. "내가 통닭 시켜줄 테니까 먹어라…." 그 말 한마디에 만감이 교차했다. 갑자기 왜 그러실까? 뭔가 기분이 좋지 않다. 아무튼, 인사 전하고 고맙게 배달온 통닭을 받았다.


인터넷하고 있는데 옆집에서 아주머니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살기 싫다!"


이 말 한마디는 나는 10년도 훨씬 지난 과거를 회상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울 엄마도 암에 걸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 아주머니가 매일 같이 찾아오셨고, 그 아주머니와 함께 누나와 나는 엄마를 붙들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울 엄마는 잘 치료가 되었는지 아직 건강하시다.


난 저 집 자식들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심정도 느낄 수 있다.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지만 흐느끼는 목소리에서 나는 삶과 죽음의 기로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조물주는 왜 생물을 죽도록 만들었을까? 인간에게 왜 죽음의 공포를 주었을까? 가끔 할머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편하게 죽는 것도 복 받는 거라 했다. 그래… 질병에 시달려 죽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코를 찌르는 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 틈에 자신이 끼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이 아닐 수 없을 거다.


건강해야 한다. 백만장자가 된 들 무엇하랴~ 후회 없이 살았으면 무엇하랴~ 건강하게 오래 살면 후회할지라도 죽느니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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