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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13일 차 4월 6일 (월)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9시에 병원에 왔다. 오늘 항문으로 무슨 검사 한다고 해서 누나는 휴가를 내고 나도 빨리 왔다. 내가 병원에 도착하니 누나는 조카 어린이집에 바래다주러 갔다. 일찍 일어난 탓에 병원에서 잠시 잠들었고 잠시 후 간호사가 검사받으러 가자고 왔다.


10:35

영상의학과에 도착했다. 또 잔뜩 겁먹은 엄마는 어떻게 하는 검사인지 아프지 않은 지 오래 걸리는지 걱정했다. 간호사실에 적힌 걸 보니 GASTRO ENEMA라고 되어 있었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오래 안 걸릴 거라 하고, 방사선실에서 데리고 들어 간 사람은 좀 걸린다 하고, 정확히 어떤 검사고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망할 놈의 A 병원!


인터넷 검색해보니 관장하고 나서 위를 촬영하는 검사인 듯하다. 검사는 정확히 20분 걸렸다. 엄마에게 들어보니 아프지는 않았단다.


병실에 돌아와서 보니 복대랑 옷에 똥 같은 게 묻어 있었다. 관장했던 것이 옆구리에 있는 구멍(관)으로 흘러나온 모양이다. 검사받기 전에 드레싱 했는데, 의사 불러서 다시 해야 했다. 동료 의사가 와서 얘기를 나누는데 몸 안에 아직 많이 있다고 나중에 또 많이 샐 거라 했다.


누나가 5시까지 있기로 하고 나는 일 때문에 먼저 나왔다. 이제 오늘 밤도 그렇고 내일부터 나도 누나도 바빠서 간병할 사람 없다고 간병인 부르라 했는데 기필코 가만 있어 보란다. 엄마는 병원비 많이 나올까 봐 우리 생각해서 그런 거지만 사실 병원 때문에 다른 일 볼 시간이 없어 오히려 더 힘든 거 같다. 간병인 있으면 시간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우리가 더 편할 텐데 말이다. 


아내가 퇴근길에 병원에 들렀는데, 이번 주까지 금식하고 다음 주에 오늘 한 검사 다시 한다고 했단다. 오늘 관장해서 내부가 많이 더러워진 모양인데 염증이 덧나지 않을까 걱정이고 그놈의 검사는 괜히 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부터 식사 시작하고 다음 주에 퇴원할 줄로 기대했는데, 이건 뭐 꼬박 한 달은 병원에 있을 것 같다. 잘 낫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의사 친구 말로는 알아보니 실력 있는 분이라고 믿어 보라는데 신뢰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고 말이다. 우리가 먼저 물어보기 전에는 일체 상황에 관해 설명이 없다. 첫날 내가 불만 얘기할 때 의사가 "치료는 내가 알아서 하는 거고…."라고 말했을 때 "그럼 보호자가 무슨 필요 있나 보호자에게 당연히 설명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니 "내가 그런 것(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느냐"고 답했던 사람이다. 그 뒤로 내가 일부러 면담 안 하고 누나를 통하고 있다. 나랑 얘기해봐야 엄마 치료하는 데 좋을 것 없어서 누나를 통해 전해 듣고 묵묵히 보고만 있는 것이다. 의사 친구에게 이런 얘길 하니 자기도 그런 보호자 많이 만나는데 환자 보기 꺼려지고 회피하게 된다니 내가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환자나 보호자는 아는 게 없으니 '을' 일수밖에 없지….


23:00경

일 마치고 병원에 들렀다. 병실 모두가 잠들었다. 답답한 거 싫어하는 엄마만 커튼을 열고 있고 나머지 5명은 모두 커튼 치고 잔다. 그렇게 활동적이던 사람이 병원에 2주째 기약 없이 갇혀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오늘은 누나랑 같이 있는데, "내가 짐이 되니 느그는 내가 콱 죽었으면 좋겠제?"라고 해서 마음이 아팠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려했던 대로 정신도 말라가고 있다. 평소에는 뭐 먹으러 가자면 거절하고 먹으러 가서도 "나는 이런 거 싫어하니 너거나 많이 먹어라"던 사람이 딸기 주스가 먹고 싶다느니 뭐가 먹고 싶다느니 바라는 게 많아졌다. 오늘 음식 먹을 수 있을 거라 기대가 컸을 텐데 다음 주까진 꼼짝없이 금식이라니 잔인하다.






입원 14일 차 4월 7일 (화)

지루한 날이 지나가고 있다. 오전에는 내가, 오후에는 누나가 저녁에는 아내가 잠시 들른다. 엄마가 다른 건 괜찮은데 누웠다가 앉거나 화장실 갈 때 도움이 필요해서 간병인을 부르기로 했다. 오늘은 사람이 없어서 내일부터 보내준단다.




입원 15일 차 4월 8일 (수)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구야 아프다."고 한다. 여전히 아프고 불편한가 보다. 가래 뱉는다고 각 티슈를 벌써 세 통이나 썼다. 두 통 더 가지고 왔다.

시간을 잘못 봐서 딸을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어린이집에 보냈다. 덕분에 병원에 일찍 와서 의사 회진 때 만날 수 있었다. 회진 때 지난번에 ENEMA 검사한 거 어떻게 됐느냐고 물으니 봉합 부위가 샌다고 했다. 잠시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의사 만나러 지난번처럼 간호사실 간다고 가자고 했다. 지난번처럼 거즈를 떼고 드레싱 하며 수술부위를 살폈다. 끝내면서 아드님 잠시 보자고 해서 면담하며 경과를 알려주었다.

S자 결장을 절제하고 봉합을 했는데, 그 부위가 다 아물지 못해 식사를 못 하는 것이란다. 봉합할 때 조직, 인대, 지방, 피부 순으로 봉합하는 데 제일 중요한 인대까지는 깨끗한데 지방과 피부층에 물이 찬단다. 그러면서 아무는 게 늦으니 다음 주 월요일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ENEMA를 해서 새는지 확인하고 그때도 새면 인공항문을 달아 우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할 거라고 했다. 덕분에 엄마는 물론 가족들 모두가 우울해졌다.

맹장 수술처럼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예상외로 커져서 당혹스럽다. 오전부터 간병인이 와 있었다. 우리도 힘들지만, 엄마도 새벽이나 화장실 갈 때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입원 16일 차 4월 9일 (목)

아침마다 딸 깨워서 밥 먹이고 어린이집 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 애 보는 것도 힘들지만, 밥 먹일 때가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먹는 속도도 느리고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자니 제대로 먹지도 않는다. 매우 적은 양만 먹고 그냥 보내버린다. 그 와중에 또 아토피 증상이 보이기 시작해 아내도 나도 마음이 쓰인다.

아내도 누나도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특히 누나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나마 체력이라도 강한 내가 더 많은 것을 챙겨야 할 것이다. 병원에 가자마자 간이침대에서 잠들었다. 1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그대로 출근했다. 엄마도 어제오늘 병원에 와서 자는 나를 보고 이제 오지 말라고 한다. 마음은 물론 안 그럴 테지만 말이다.

새벽에 잠꼬대처럼 헛소리하던 맞은편 할머니 쪽이 부산스럽다. 보호자 아줌마는 눈물을 흘리며 환자를 불러보지만 심상치 않다. 의사와 간호사가 들락거리며 빠른 손놀림으로 산소통을 갈아 끼우고 중환자실로 이동시킨다. 집에 가는 길에 그 보호자들의 분위기를 봐서는 돌아가시는 것 같다. 나의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섬뜩하다. 주위 다른 사람들 모두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입원 18일 차 4월 11일 (토)

볼일 보고 오니 엄마는 진통제 맞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내가 와서 사부작거리다 엄마가 깼다. 여전히 아프고 어젯밤에는 새벽 내도록 끙끙거렸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과장을 만났는데, 인공항문 달게 될 것 같으냐니깐 그렇단다. 젠장!

언젠간 낫겠지만, 끝이 보이질 않는다. 저녁까지 있을 거냐고 묻더니 나중에 좀 보잖다. 별로 좋은 신호는 아닐 터…. 나는 일 때문에 일찍 일어난 탓에 간이침대에서 잠들었다. 병원만 오면 자는 게 익숙해졌다. 날씨 좋은 주말에 아내랑 딸에게 좀 미안하기도 하다.

간병인이 내일 오전까지만 하고 자기도 눈에 수술할 게 있어서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돈이 없어 집에 가서 카드를 가져와 뽑아줬다. 저녁엔 날도 차서 외투도 가져와야 한다.

15시쯤에 와서 잠시 옷 가지러 갔다가 줄곧 병원에 있었다. 18시나 되면 의사 만나지 싶었는데 20시가 되어서야 엄마 드레싱 한다고 간호사실로 불렀다. 드레싱 하면서 많이 깨끗해졌다고 했다. 지난번에도 그런 소리 해놓고…. 낮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나중에 잠시 보자고 했기 때문에 계속 기다린 건데 드레싱 끝나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누나도 같이 기다렸는데 간호사에게 물으니 수술 시간이 다 되었단다. 부를까 하다가 수술하러 가는 사람 잡을 수 없으니 허탈해졌다. 월요일 예정된 검사를 받느냐고 간호사에게 물으니 피검사 말고는 일정이 없단다. 당일 오전에 오더가 날 리가 없을 것 같은데 내일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무슨 말을 들을지 종일 걱정했는데 찝찝한 기분으로 돌아간다.




입원 19일 차 4월 12일 (일)

이모가 다녀가셨나 보다. 자기가 간병해줄라 했는데 엄마가 극구 그냥 가라고 했단다. 이모도 예전에 다른 수술한 적이 있어 건강한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모가 전화 와서 다녀가신다며 의사 만났는데 또 수술해야 할거라 했다고 걱정이 많다. 내게 큰 병원으로 계속 옮기라고 그랬다. 

나 역시 그것을 고려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의사 친구가 우리 담당의가 분야의 실력자로 알려졌으니 믿고 치료받으라 조언해줬었다. 그리고 수술한 환자는 타 병원에서 꺼린다고 했다. 

월요일 검사일정이 안 잡혀있어 누나가 알아보니 장 내용물이 계속 새고 있으니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바로 화요일에 인공항문 만드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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