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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의 비밀/엄마를 앗아간 게실염

입원 86~91일 차 - 종착역으로 가는 길

by 대류 2015. 6. 23.

입원 86일 차 6월 18일 (목)


어젯밤부터 딸이 열이 나더니만 오늘 끝내 어린이집에 갈 수가 없었다. 39도까지 열이 올라 병원에서 약 받아와서 집에서 쉰다고 엄마에게 가지 못하고 대신 누나가 두 번 다 면회 갔다.


12:10

누나가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가 투석하고 방금 내려왔는데, 몸이 노랗게 보인다고 했다. 줄이 막혔는지 어수선해서 잠시 나왔다고 한다. 그러고는 다시 들어갔는데 눈을 뜨고 있어 부르니까 눈이 감기더란다. 혈압이 조금 낮다고 했다.


간호사가 머리카락이 계속 빠지고 엉켜서 머리에 부종이나 욕창 확인이 안 된다고 머리를 미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는데 누나가 강경히 반대한다. 엄마가 병실에 있을 때 집에 가면 염색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18:58

저녁 면회에 가니 엄마가 눈을 뜨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초점 없이 깜빡이기만 하는데, 눈빛이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망연자실해 보였고 눈을 감기 직전 한쪽 눈이 '내 새끼들 우야노'하는 것 같더란다. 


몸이 낮보다 더 노란 것 같고 눈도 노랗다고 했다. 몸 전체가 부을 대로 부어 있어 엄마가 커 보였다고 한다. 소변도 시간당 30cc로 뭐 나아진 것이 없다.


대장 문합부 누출을 시작으로 장 유착, 소장 천공, 폐부종(폐수증), 패혈증, 급성 신부전, 범발성 혈관 내 응고(DIC)가 차례로 왔고 그러면서 소변은 나오지 않아 몸이 부어오르고 간 수치가 점점 올라갔는데 이제는 황달을 보인다. 그다음은 뭘까? 역순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입원 87일 차 6월 19일 (금)


누나가 어제 황달이라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약간 노래 보이기는 해도 심해 보이지는 않는다. 혈소판을 맞고 있으며 주입이 끝나니까 수혈을 한다. 혈압이나 모니터에 표시되는 숫자들은 안정세를 보인다.


씻지 못해서 팔과 손에 피부가 일어난 것을 물티슈로 닦고 로션을 발라 줬는데, 피부를 살짝 누르거나 하면 노란색이 도드라진다. 


어제 눈을 떴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눈을 뜨지 않았다. 손으로 눈을 벌려 내 말 들리면 눈동자 움직여 보라고 하니 움직인다. 무의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푹 쉬고 힘내라 말해 주고 돌아섰다. 


19:37

누나가 엄마 붓기가 어제보단 조금 빠진 거 같다고 했다. 다행스러우면서도 큰 감흥은 없었다. 계속 반복되고 있는 현상이니 말이다. 






입원 88일 차 6월 20일 (토)


00:00

오랜 지인들과 싸ㅇㅇㅇ 모임을 했다. 엄마 어디서 수술했냐고 물어와 A 병원에서 했다고 하니 왜 거기서 했느냐고 뭐라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그런 얘기다. 다시 한 번 내 결정에 후회가 밀려왔다. 처음 과장 수술 잘 됐다고 했던 말을 그대로 지인들에게 전했는데 오랜만에 만나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른다고 하니 다들 황당해 한다. 

모임 자리에 가서 사람들과 시시덕거리다가도 엄마가 떠오르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여기서 소고기 배부르게 먹으며 노닥거리는 동안 엄마는 외로운 병실에서 고통과 싸우고 있음이니 말이다. 그것도 바로 병원 가까운 곳이라 병원이 보이면 더 죄책감이 커졌다. 먼저 간다고 하면 잡을까 봐 말도 하지 않고 나와서 카톡으로 먼저 간다고 했다. 집으로 걸어오며 머리 하얗게 새어가며 퉁퉁 부어 있는 엄마의 모습과 낮에 닦아주었던 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12:10

엄마에게 도착하면 맨 먼저 모니터 확인하고 소변 통과 가래 통을 본다. 그리고 얼굴과 손발 피부 상태를 본다.


맥박은 60대로 느려졌고 소변 통엔 방광을 씻어내고 있어 여전히 핏물이 고여있다. 그리고 가래 통을 보다가 흠칫 놀랐다. 거기도 핏물이 받아져 있었다. 간호사가 윗니가 흔들리고 있었는데 삽관 호스 교체하다가 두 개가 빠져서 피가 나는 거라 했다. 큰 잘못이 없는 것처럼 얘기한다. 미안한 기색도 없다. 엄마 이가 원래 흔들리고 있었다고 얘기한다. 아랫니도 흔들리고 있단다. 원래 그랬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인공호흡기 때문에 입에 물려놓은 큰 플라스틱 때문이겠지…? 모든 것이 병원에 오래 있으면서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엄마 몸이 너무 부어 있어 운동으로 다져진 내 몸보다 더 커졌다. 어깨가 나보다 더 넓었다. 도무지 이래서는 깨어날 것도 같지 않고 깨어나도 자신을 보며 얼마나 괴로워할지 모르겠다. 


과장을 못 본지 일주일이 넘었다. 나는 일부러 면담 신청을 하지 않는다. 늘 같은 소리만 하니까…. 그렇더라도 상태가 악화하면 보호자 면회 시간에 와서 뭐라고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마 자기도 꺼려질 것이다. 나아지는 게 없고 답도 안 보이니 말이다. 성실하고 꼼꼼하지만, 능력이나 염치는 없어 보인다.


18:30

누나와 함께 들어갔다. 중환자실에 들어서니 비프음이 계속 울린다. 엄마는 노랗게 물들었고 여전히 전신이 부어있다. 혈압이 100 밑으로 떨어져서 낮고 맥박도 낮에는 70대에서 50~60선에 걸터 있다. 50 이하로 내려가면 경보가 울리는데 중환자실에 머무르는 내내 울어댄다. 승압제 두 개를 꽂아 놓고 계속 보내고 있다. 방광에서는 며칠이 지나도록 출혈이 멈추지 않아 소변 줄과 통에 핏물이 가득 담겼다. 누나가 머리를 쓸어주니 머리카락이 움큼씩 빠진다.


과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오늘 투석은 한 시간밖에 못 하고 왔다고 했다. 또다시 숫자 가지고 설명을 늘어놓는 데 나아진 것이 하나 없다. 


과장에게 이것이 진짜 환자를 위한 것인가 투석을 중단하고 보내는 것이 맞지 않느냐니까 또 우리에게 힘내라고 자기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그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노력하는 모습보다는 결과가 최선이어야 하는데 결과가 최악 중의 최악이다.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다. 이 와중에 소장 천공부위는 여전히 아물지 못하고 새고 있단다. 우리는 진정 모르겠다. 이것이 최선인지….






입원 89일 차 6월 21일 (일)


12:00

맥박이 40대에서 뛰고 있다. 계속 주시하고 있어 보니 40~60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불안정한 상태다. 혈압은 기록을 보니 아침에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내가 갔을 때는 90/40 정도로 계속 낮은 상태로 있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 어느 것 하나 나아지지 않았다.


19:08

저녁에 누나가 엄마에게 갔다가 상태를 알려왔다. 맥박이나 혈압은 낮과 비슷하거나 조금 나쁘고 새벽엔 체온이 갑자기 떨어져 전기담요도 했단다. 저녁엔 이불 덮고 있고 승압제 더 올려 맞고 있고 피가 계속 나와 내일 투석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단다. 보통 의식이 아예 없고 소변이 나오지 않으면 지금 같은 상황에선 하루 이틀 만에 돌아가시는데 엄마 상황이 모호한 것 같다고 했단다. 






입원 90일 차 6월 22일 (월)

어젯밤부터 고열에 시달려 이불을 3개나 적셨다. 열이 나면 병원에 들어갈 수 없어서 누나가 갔다.

12:32
엄마는 어제처럼 맥박은 약한 상태고 체온이 36도 아래로 떨어져 이불을 두 겹 덮고 있다고 했다. 간호사한테 물어보니 약물에 의존하고 있는 게 맞고 약물을 조금만 줄여도 위험하다고 한다. 누나가 이번 주 지나면 더는 투석이나 약물 조정 안 했으면 한다니까 이번 주까지 버틸지도 모른다고 했단다.





입원 91일 차 6월 23일 (화)


편도염이 낫는가 싶더니 다시 열이 나서 딸 어린이집 보내놓고 다시금 이불 뒤집어쓰고 누웠다. 자면서 땀을 빼고 있었다.


10:25

누나에게서 어서 챙겨서 병원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 사이 숫자들이 상태가 좋지 않더니 끝내 위험한 상황이 왔나 싶어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면서 열이 나는 데 안 들여보내 줄까 봐 걱정했다.


10:30

병원에 오니 인공호흡기 떼고 과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PA가 펌프로 공기를 넣고 있다. 간호사들은 다른 인공호흡기로 바꾸고 있었다. 주사도 이것저것 많이 놓고 석션하는데 입에서 피가 빨려 나온다. 


잠시 뒤 조금 진정되었다. 하지만 맥박은 여전히 낮다. 과장이 아까 심정지가 왔었다고 다시 올 수 있으니 오전 동안 좀 있다가 가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추가로 다른 약물을 쓰거나 승압제를 더 올려 쓰지 않겠다고 했다. 진작에 그랬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만 가중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아래층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 봤다. 편도염이라고 한다. 다시 중환자실 앞에 왔는데, 오늘은 넘기지 않겠나 싶어 누나에게 말하고 먼저 집에 왔다.


12:23

간호사가 약간 안정세라고 집에 가 있으라 해서 누나도 집에 갔단다.


19:01

면회 다녀온 누나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 숨소리가 좀 안 좋고 얼굴과 목이 많이 부은 것 같단다. 좀 더 기다려 보잔다. 이제 우리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저 오늘 밤일지 내일일지 긴장된 시간을 보낼 뿐이다. 내일은 막내 조카 생일이다. 큰 조카 생일 때도 위급상황이 왔었는데, 작은 조카 생일에 또 일이 생기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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