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측 보험사로 부터 보상을 받은 후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 얘기했던 대로 엄마 보험사에도 질병 사망 보상금이 아닌 상해 사망 보상금을 신청했다. 상해사망에 대한 보상이 두 배 이상 크기 때문이다.


병원 측 보험사로부터 소송 없이 합의를 받았으니 이것은 그쪽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고 사망의 원인이 의사의 과실이니 상해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사무장의 설명이었다.


의사에게는 내가 마지막에 소송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병원 측과 합의가 안 되면 거기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생각 외로 한 번에 합의가 이뤄 졌지만, 엄마 보험사와는 긴 싸움을 예상하고 있었고 착수금까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보험사에서 의뢰받은 손해사정업체에서 직원이 나와 변호사 사무실에서 대면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리는 상해사망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소송까지 갈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직원은 3주 안에 답을 주겠다고 했는데, 두 달이 다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물론, 그 사이 사무장님이 독촉도 하고 통화하면서 뭔가 조율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결과는 90% 선에서 합의하기로 했다.


엄마는 많이 배우지 못하고 크게 누리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시고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다. 누나와 내가 결혼할 때 도움을 주지도 못했고 학비도, 용돈도 우리는 스스로 해결하며 자랐다. 엄마는 우리에게 헌신하였음에도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 우리는 모두 가정을 안정권에 올려놓았고 엄마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엄마는 효도마저도 누리지 못하고 가셨다.


끝내 우리에게 물려줄 재산조차 없었고 오히려 빚쟁이가 찾아 왔었다. 하지만 의사의 과실로 우리는 병원과 보험사 측으로부터 적지 않은 보상을 받았고 이것이 결국은 엄마가 우리에게 주고 간 선물이 아닌가 싶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엄마가 생각나고 병원에서의 시간이 영상처럼 스치며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 독하다는 보험사마저도 문제 제기 없이 합의하는 것으로 보아 의사의 과실이 컸음이 다시 한 번 확증되었다. 


소송까지 가지 않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은 더욱 씁쓸해 진다.


보험사와의 소송에 대비해 엄마와 관련된 물품이나 서류들을 모두 챙겨 놓고 있었다. 이제 더는 보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설날에 엄마에게 찾아가 얘기해주고 정리하고 돌아와야겠다.


참고로, 변호사에게는 합의금을 받을 때마다 20%를 주었다. 우리를 이 변호사 사무실로 이끌어 주었던 보험 설계사를 만나 식사도 하고 사례도 할 생각이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엄마와 관련된 일을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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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136일 차


엄마의 병원에서 오늘내일하는 상황이 되자. 주변 어른들이 병원을 옮기라는 둥, 의료 사고 아니냐는 둥…. 도와주지는 않을 거면서 말들이 참 많았다. 누나와 나는 우리의 선택대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갔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한편으로 우리의 선택이 틀렸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압박을 받았었다. 


그리고 결과는 우리의 선택이 틀린 것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그런 얘기를 했던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게 되어 버렸고 가슴 한쪽에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냥 이대로 잊고 살기에는 그 짐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아서 우리는 예전에 인연이 있던 보험 설계사가 추천해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수개월을 기다린 끝에 지난 금요일에 병원 측 대리인(병원 측 보험사)과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위로 보상금은 크지 않지만, 병원 측으로부터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짐 하나를 내려놓은 듯하다.


큰 마찰 없이 원만히 합의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내가 기록으로 남긴 이 병상일지가 큰 역할을 하였다. 설명의 의무, 환자 상태에 대한 처치, 치료 과정에서의 문제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으므로 근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혹여나 누가 큰 병으로 입원하게 된다면 나와 같이 이런 병상일지를 쓰면 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니 추천하는 바이다.


※ 변호사 사무실과 진행했던 과정 정리 

1. 의료기록부 등 필요 서류 준비하여 변호사 사무실 방문

2.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맥 활용하여 진료기록부 의료감점 → 큰 문제는 없다고 나왔음. 

3. 내가 적은 병상일지를 토대로 내용증명 보냄

4. 병원 측에서 이를 법률팀+보험사에 이첩시킴 (우리 쪽 변호사 vs 병원 법률팀+보험사)

5. 병원 보험사 측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 과실이 있음을 인정

6. 큰 마찰 없이 합의 → 합의 안 되면 민사소송을 해야 함.


우리는 내가 과장에게 소송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합의가 안 되면 마음을 접으려고 했는데, 다행히 잘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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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배불리 먹고 내방 벽에 걸려있는 엄마 사진을 봤다. 내 결혼식 때 찍었던 사진이라 한복을 입고 있다.


엄마 옷 중에는 좋은 게 없었다. 한 번은 비싼 옷 사주고 싶어 백화점에 같이 갔는데, 끝끝내 엄마는 사지 않았다. 나는 비싸도 마음에 들면 사는데… 울 엄마는 평생 좋은 옷, 비싼 옷 한번 입어보지 못하고 가셨다.


아들이 이렇게 돈도 잘 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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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20일 차


그러고 보니 엄마는 입원해서 숨을 거둘 때까지 두려워했는데, 눈물은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죽게 될지 몰랐기에 그랬을 테지? 유언 한 마디도 남기지 않은 것은 그리될지 본인도 몰랐던 것이다.


엄마가 의식 없이 죽어가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사랑해요."라고 말했던 것이 안타깝다.

이 병원 의사 잘한다고 하니 믿어 보라고 엄마를 안심시키려 했던 것이 아쉽다.

의사와 면담할 때마다 불안해하던 엄마를 안심시키려 별거 아니라고 말했던 내가 원망스럽다.

바쁘다는 핑계로 병실에 엄마만 남겨두고 돌아와 편히 집에서 잠을 잤던 내가 밉다.

어제는 비가 억수로 쏟아 부었다. 땅속으로 스며들어 엄마의 관 속에 물이 차지나 않았을까….엄마가 추워하진 않을까….


생각이란 걸 할 여유만 생기면 엄마가 떠오른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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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16일 차


운전하고 가다 엄마가 병원에 있을 때 문병 왔던 아줌마를 봤다. 그리고 곧바로 그때 당시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엄마는 일반병실에서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 딸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엄마 병원에 간다.

엄마는 반가운 듯하지만 내색은 않는다.

엄마 친구가 와서 얘기를 나눈다.

나는 일하러 간다고 나온다.

내가 갈 때마다 엄마는 곁에 있었으면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지인들이 찾아오며 죽이며 먹을거리를 자주 가지고 왔는데, 하나도 제대로 멋질 못했지…. 하지만 그 누구도 엄마가 숨을 쉬지 못하게 될 거란 걸 상상도 못 했지….


시간이 흐르면 잊힐 것 같았는데, 점점 더 이성적으로 되어가서 그런지 더~ 더~ 그 과정이 원망스럽고 화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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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10일 차


어제 병원에서 땐 서류를 가지고 누나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은 사망 직후에 부검하지 않을 것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입원 직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건강했던 사람이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큰 의심이나 이의제기 없이 그냥 묻으려 했다는 점도 안타까워했다.


변호사와 사무장과 함께 상담을 진행했고 일단 1차 적으로 의료감정을 받아 본 후에 병원 측과 합의를 하든 소송을 하든 진행하기로 하고 나왔다. 의료 감정까지는 대략 2주 걸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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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9일 차


진료기록부 등 대응에 필요한 서류를 떼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원무과에서는 안 되고 담당의를 만나야 한다고 해서 외과로 향했다. 외과 간호사에게 서류 떼러 왔다고 하니 과장이 오후 진료니 그때 오란다. 


점심 약속에 갔다가 2시 조금 안 돼서 병원에 도착했다. 한 시간이나 기다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과장을 만났다. 내가 들어가니 곧바로 서류를 간호사에게 주며 다 복사해 주라고 한다.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10초 만에 일 처리가 끝났다. 그냥 나오기 뭣해서 내가 전해 준 병상일지 읽어 봤냐니까 잘 읽었고 그땐 얘기 못했었는데 미안하고 면목없다고 했다.


간호사를 따라 의료기록실로 향했다. 양이 많아서 한 시간 넘게 걸린다고 했다. 비용도 제법 든단다. 나중에 찾으러 온다 하고 볼일을 보고 왔다. 비용은 대략 8만 원 정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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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르고 엄마가 얘기한 데로 담배 두 보루를 사 들고 누나와 담당의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동안 병상일지의 마지막으로 과장에게 편지도 한 통 썼다. 처음 진료부터 편지까지 모든 이야기를 출력해서 전달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우리의 심정을 알아 달라는 의미다.


저는 2015년 3월 25일부터 과장님이 진료하여 같은 해 6월 24일에 과장님이 사망 선고했던 故 000 환자의 아들입니다. 


저는 당신을 생각하면 참으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결과는 최악이지만, 당신이 최선을 다해주었음에 누나와 저는 이견이 없습니다. 쉬는 날도 나와서 애써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의사는 의술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에는 우리를 비롯한 선생님 또한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의식 없는 모습을 보는 것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다리며 입술이며 피부마저 성한 곳이 없는데 마지막에 삽관하며 이가 빠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전신이 터질 듯이 부풀어 저보다 몸이 더 커지고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마지막 얼굴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매 순간의 감정을 일기로 기록하였습니다. 소송을 통해 억울함을 풀고 싶지만 그 대신 선생님께 이 일지를 드리겠습니다. 이것으로 우리 엄마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고 더불어 우리의 아픔도 함께 해주십시오.


생을 마감하면서 마지막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가신 것이 가장 가슴 아프고, 자식 손 한 번 꼭 잡아보지 못하고 가신 것이… 그것이 한으로 남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원망합니다. 그렇지만 수고 많으셨고 애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선생님이 꼭 함께 떠오르네요…. 그리고는 '애증'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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