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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의 비밀/엄마를 앗아간 게실염

입원 62~68일 차 - 인공호흡기 달고 급성신부전으로 혈액 투석 시작

by 대류 2015. 5. 31.

입원 62일 차 5월 25일 (월) - 인공호흡기 착용


12:00

병원에 도착하니 우려했던 대로 엄마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다. 이젠 부르면서 어깨를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 의식이 거의 없다. 손발이 많이 부어있다. 내가 오자마자 놀랄 것을 예상하고 간호사가 잠시 기다리라며 과장을 불렀다. 호흡이 나빠져 11시에 인공호흡기를 달았단다. 누나가 곧 도착하고 과장이 왔다. 늘 그렇듯 링거로 조절한다고 말한다. 염증 수치가 어제 정상범주인 9점대로 들어갔었는데 무려 17이 넘게 나왔다. 콩팥 수치도 나쁘다. 염증 수치는 변 때문이라는데 내가 먹는 것도 없는데 계속 그렇게 변이 나오느냐니까 속 시원히 말을 못한다. 이전에 있었던 거 같다고 하는데 이게 계속 나오니 참 믿기지도 않는다. 의사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3차 수술 후 급격히 나빠졌으니 엄마도 우리도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채로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어가고 있으니 그게 너무 억울하다. 이렇게 한마디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는 건 아닐지 너무 걱정이다. 예쁜 손자 손녀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낮에 볼일 보고 16시쯤 누나와 엄마 집에 들러 물건을 정리하고 통장 등 귀중품을 챙겨왔다. 냉장고도 정리하고 쓰레기도 많이 내다 버렸다. 엄마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하지 않아도 미리 대비하는 건가 보다.


18:30

누나와 같이 집 정리하고 엄마에게 갔다. 낮보다 더 손발이 부어 있어 바늘로 찌르면 터져서 물이 나올 것만 같다. 간호사가 과장이 드레싱 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깨끗하게 나왔단다. 엄마가 링거도 주렁주렁 달고 있는데 손발도 붓고 호흡기까지 물고 있으니 몰골이 좋지 않다. 그러니 누나가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나는 눈물이 날듯하면서 언제부터인가 눈물이 마른 지 오래다. 


병원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기계에 엄마 통장을 찍어 보았다. 이상한 점이 많아 누나와 집에 와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엄마 통장을 보면서 3천만 원이라는 큰 금액이 짧은 시간에 빠져나간 것을 발견하고 이래저래 알아보면서 채무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이 문제로 골머리 꽤 썩을 것 같다. 엄마가 깨어나면 다 정리될 텐데 이 또한 아쉽다.






입원 63일 차 5월 26일 (화)


12:00

엄마의 호흡이 좀 편해진 것을 이젠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호흡기 때문에 괴로운지 머리를 흔들고 얼굴도 찌푸린다. 힘들어하지만 움직임이 있으니 반가웠다. 그리고 중간에 1초의 찰나지만 눈도 잠시 떴었다. 손발의 붓기도 조금 사그라들었다.


과장이 왔다. 염증 수치가 여전히 높지만 조금 떨어지고 대변이 이젠 다 나왔는지 나오는 게 거의 없단다. 복부 수술 부위는 한 바늘 꿰맸는데 장 내용물이 나오고 있어 잘 아물지는 않을 거란다.


다른 건 어느 정도 괜찮은데 문제는 역시 콩팥이다. 크레아티닌 수치가 3.4를 넘었고 다른 콩팥 수치들도 매우 나쁘다. 신장내과 레지던트가 인공 투석을 권장했다는데, 신장내과 과장이랑 상의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단다.


엄마 채무관계의 중심에 있는 '묵이 엄마'와 '눈보'라는 사람이 중환자실에 왔다. 음흉한 인간들인 것 같다. 슬픈척하며 엄마 상태를 살핀다. 이 문제로 우리는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엄마가 깨어나기 전에는 실타래를 풀기 어려울 것 같다.


엄마에게 어떤 아줌마가 돈 갚으라고 한다고 돈 빌린 거 있느냐고 물으니 머리를 흔드는데 말을 듣고 흔드는 건지 호흡기에 따른 반응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골치 아픈 문제다.


19:00

누나가 면회 가서 과장과 만났다. 신장내과에서는 24시간 서서히 투석하는 CRRT를 권장했는데, 이 병원에는 장비가 없고 4시간 동안 혈액 투석하는 기계만 있다고 했단다. 과장은 꼭 CRRT만을 해야 하는 건 아니고 의료진이 잘 지켜보면서 하면 4시간짜리 투석을 해도 될 것 같으니 이 병원에서 하라는 식으로 얘기했단다. 투석 외에도 자신이 수술한 부위의 드레싱이 매우 중요므로 제일 잘 아는 자기가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지난번과 같이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것에 크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중환자를 이동시켜야 하는 부담과 케어를 처음부터 정성껏 해준 과장이 아닌 아마도 레지던트이거나 PA 정도의 다른 사람이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을 지고 안정적인 투석을 할 것이냐와 투석의 위험을 안고 나머지를 얻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과장은 자기가 잘 봐주겠다고 이 병원에서 하라는 입장이다. 


의사 친구에게 전화했다. 양산 부산대병원에는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 응급실에서 대기해야 하고 투석기도 다 사용 중이라 남는 것이 없단다. 그리고 이동의 위험성이 크고 과장이 드레싱 해주는 점을 들어서 그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누나와 내 생각도 같다. 아예 서울로 갈까도 했지만, 이동 자체가 너무 위험하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의사가 자신감을 보이니 끝까지 믿어보기로 했다.






입원 64일 차 5월 27일 (수) - 혈액 투석 시작


10:48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의사가 면담하자고 했단다.


11:40

중환자실 앞에서 낯선 의사와 만났다. 내과 레지던트다. 신장투석 과정을 설명하고 부작용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이 의사의 말을 요약하면


1. 큰 병원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2. 엄마는 다발성 장기 부전이다.

3. 의식이 좋지 않다.

4. 쇼크 등 부작용이 일어나 사망 가능성이 크다.


이 정도의 내용이다. 거의 한 시간이나 설명을 들었다. 아무튼, 이 병원에서 하기로 결정되었다. 


엄마 상태가 좋은 게 아니라 부작용이 상당히 많고 위험해서 마음이 계속 불안한 상태다. 혹시나 정신없는 상황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 돌아와서 영정사진도 만들고 상조도 살펴봤다. 며칠간 의학 정보들 자료를 찾아보고 의료분쟁과 채무와 관련한 법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엄마가 완치되지 못한다면 유언이라도 하고 손자 손녀 얼굴이라도 보고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19:05

병원에 갔던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투석은 무리 올까 봐 2시간만 하고 엄마가 잘 견뎠다고 했다. 혈압도 이상이 없었다니 다행이다.






입원 65일 차 5월 28일 (목)


12:00

중환자실에 가니 투석 실에 갔다고 4층에 가 보란다. 큰고모와 이모할머니가 와 계신다. 엄마는 쇄골부위에 굵은 관을 끼우고 투석 중이다. 간호사들은 잘 버티고 계시다고 했단다. 면회시간이 길지 않아 잠시 보고 나왔다. 어제부터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괴로운 건가…? 아플까 봐 걱정이다.


큰고모와 이모할머니는 가시고 과장을 만나러 다시 중환자실에 왔다. 염증 수치가 계속 정상 범주보다 높은 11~14 정도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크레아티닌 수치는 4.4로 아직 투석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신장 수치는 약간 나아졌지만, 의미 있는 변화는 아니다.


문제는 이제 간 수치도 정상 범주를 크게 벗어나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과에서는 간에 이상이 생기겠다고 했다는데 과장은 전체를 종합해보면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된다고 했다. 어제 만났던 내과 레지던트는 아주 비관적인 얘기만 하는 것에 비해 이 과장은 긍정적으로 얘기해서 사람을 좀 안심시킨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실망이 크기도 하다. 과장의 말 속에서 내과는 자신의 아래라는 뉘앙스와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수술 부위는 소장을 꿰매놓은 부위가 잘 아물지 않아 약간 벌려져 있는 상태고 변은 더 나오지 않고 장 점액만 나오는 거로 봐서 변은 다 나온 것 같다고 어제에 이어 다시 얘기했다. 


오늘은 투석을 세 시간 했고 이틀 뒤 토요일에 또 하기로 했다. 화, 목, 토 주 3회로 지속할 건가 보다.


18:50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눈을 뜨고 10초간 자기를 응시했다고 했다. 호흡도 평온해 보인단다. 일하면서도 한결 마음이 편하다.






입원 66일 차 5월 29일 (금)

12:00
중환자실에 들어서니 큰아빠, 큰엄마, 서울 숙모가 누나와 같이 엄마를 보고 있다. 엄마는 인공호흡기 빼고 자가호흡 연습을 하는 중이란다. 제법 숨소리가 거칠다. 가래가 끼면 스스로 뱉을 수가 없으니 간호사에게 얘기하니 괜찮다고 한다. 가족들이 눈치를 주니 급히 와서 흡입기로 빼내는데 무작스럽게 관을 쑤셔 넣는다. 저러다 기도에 상처 내지 싶을 정도로 우악스럽다. 썰렁하던 중환자실에 제법 환자가 들어왔다.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엄마의 상태를 알기 위해 검사 수치 물어볼까 하다 다들 바빠 보여 그냥 있었다. 과장에게 매번 면담하자 하기도 미안해서 오늘은 조용히 있었다.

엄마 자세가 이상해서 보니 왼쪽에 이불을 받쳐 기울여 놓았다. 욕창을 방지하려고 그런 것 같다. 간호사가 엉덩이 쪽이 좀 빨갛다고 했다. 욕창의 전조증상이겠지? 걱정스럽다. 의식이 많이 돌아왔는지 움직임이 많다. 손도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데 만약을 대비해 묶어 놓았다.

나는 일 때문에 저녁에는 못 가고 상대적으로 퇴근이 빠른 누나가 거의 매일 저녁 가서 면담도 하고 엄마도 살피며 얘기를 해준다. 낮에 갔을 때도 열이 난다고 했는데 계속 열이 나서 13시경에 호흡기를 꽂았다고. 한다. 많이 편해 보인다고 했다. 

오늘은 의사를 만나지 못해 파악이 잘 안 되는데 급격히 나빠지던 것들이 서서 좋아지거나 큰 변동 없이 유지되면서 소강기에 있는 것 같다. 지루한 싸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 또 투석할 테고 일요일 회복되어 6월의 시작은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는 소식으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입원 67일 차 5월 30일 (토)

12:15
매일 가면서도 12시 30분이 면회 시간인 줄 착각해서 1층에서 기다리다가 순간 아치 싶어서 급히 올라갔다. 가는 길에 과장을 만났는데 혈압이 높고 열이 난다는데 누나에게 설명 듣겠다 했다.

큰엄마, 막내 고모, 서울 숙모가 와 계셨다. 누나에게 수치는 어떻더냐고 물으니 큰 변화 없이 오히려 콩팥 수치는 약간 올랐다고 한다. 피 검사에서 혈액 속에 곰팡이 균이 발견됐는데 그것 때문에 열이 나는 것인지 확실히 몰라 일단 그것과 관련된 약을 써보고 아니면 다시 원인을 찾는다고 했단다. 열이 38도가 넘는가 보다. 병원에 온 이후로 열이 참 오르락내리락한다. 손발이 많이 차다. 장 내용물도 많이 뽑아내고 있다.

18:00
병원에 도착하니 과장이 드레싱 중이다. 수술부위 벌려 놓은 곳이 전보다 더 커진 것 같다. 소장이 드러나도록 해놨다. 소장을 꿰맨 부위가 아물지 않아 아무는 상황 본다고 그런 거란다. 소장 내용물이 몸속으로 들어가 복막염이 되지 않도록 석션하는 호스도 꽂아 놓은 것이다. 음식이라도 좀 먹어야 잘 아물 텐데 먹는 것도 없으니 잘 안 아문단다. 그 부위가 딱 봐도 감염의 위험이 커 보이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대장 문합부 누출 부위는 좀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좀 더 있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단다. 호스 하나라도 빨리 제거되었으면 좋겠다.

드레싱 끝나고 마무리할 때 엄마가 갑자기 눈을 떴다. 너무 오랜만에 눈 뜨고 있는 모습을 봐서 놀라서 누나랑 달려들어 "엄마! 엄마!" 연신 불렀다. 눈동자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측으로 돌아가 있어 의식적으로 우리를 본 것은 아니지 싶다. 엄마와 눈을 마주쳤을 때 너희가 고생이 많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낮에 혈액에서 곰팡이 균이 나왔다 해서 찾아보니 이거 역시 패혈증 증상인 것 같았다. 이대로 더 지나면 혈압이 떨어지고 황달도 생기다 쇼크사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중환자실에서 맥박이 계속 100 정도에 있었는데 오늘은 70대에 있고 몸통도 노랗게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손발이 차갑기도 한 것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병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엄마 집에 들러 냉동실에 있던 걸 다 가져와서 버리고 다시 가서 식품류를 다 가져와 버렸다.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하기 힘든 것들을 미리 정리 해놔야 일이 줄어들테니 말이다.





입원 68일 차 5월 31일 (일)

12:00
엄마가 눈을 뜨고 있다. 잠시 감아도 우리가 부르면 눈을 뜬다. 가래가 끼어 중간중간 끓는 소리가 나지만 호흡이 매우 조용하고 안정적인 것 같다. 손이 좀 부어 있지만 누나 말로는 콩팥 수치도 좀 떨어졌다고 했단다.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무엇보다 엄마가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오전에 과장이 드레싱하고 갔단다. 쉬는 날이지만 나와서 계속 관리해주는 것이 고맙다.

18:30
누나가 엄마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고 로션도 발라줬다. 손발톱이 무좀 때문에 엉망이라 손톱을 깎지는 못하고 갈아서 정리해줬다. 우리를 바라보는데 눈빛이 슬퍼 오래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막상 눈을 뜨니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엄마를 바라만 볼 뿐이다.

오늘 상태만 봐서는 내일 당장에라도 호흡기 빼고 투석도 중단해도 될 것 같은데 어찌 되려나 모르겠다. 내일 병원에 갔을 때 더 나은 모습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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