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1일 차 6월 24일 (수) - 입원 92일 차 


05:58


새벽 3시나 되어 잠들었을까? 얼마 자지 못하고 전화가 울렸다. 이른 새벽 누나가 전화했으니 반사적으로 일어나 뛰쳐나갔다.


06:11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가 너무 처참한 모습이다. 앞니 두 개가 없으니 얼굴이 엉망이고 누나 말대로 목과 얼굴이 부어 있어 울 엄마가 맞나 싶었다. 손발 눈까지 붓지 않은 곳이 없다. 6시 15분경 과장이 "사망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인공호흡기를 떼니 정말로 숨을 쉬지 않는다. 진작에 사망해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의혹마저 든다. 지난 3개월이 영상처럼 지나간다. 믿어지지 않는다. 배 아프다고 하기 하루 전만 하더라도 손녀 돌봐주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사람이 이렇게 처참한 몰골로 죽었다니 참 의사를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과장과 간호사들이 한참을 뒷수습했고 이제야 엄마는 아무런 주사도 호스도 없는 자유가 되었다. 그런데 빠진 이와 불어터진 입술 때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정말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엄마가 눈앞에서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07:10

영안실 직원이 엄마를 데리러 왔다. 엄마가 한 달여 동안 누워 있던 침대보로 엄마를 돌돌 말아 싸매서 이동 침대로 옮겼다. 


07:17

지하 2층 퀴퀴한 냄새가 나는 안치실 또 왔다. 안치실도 장례식장 호실도 아빠가 쓰던 그대로라 낯설지 않다. 냉장고같이 생긴 안치실에 엄마가 들어갔다.


07:30

장례식장 상담실에 들러 앞에 상담했던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상품을 골랐다. 되도록 간소하게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모든 부분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상담 마치고 누나와 나는 각자 집으로 가서 준비해서 10시에 다시 병원에 왔다. 짐을 풀고 원무과에서 결제하러 오라는 호출이 와서 올라갔다. 원무과 직원이 계산하는 데만도 한참 걸렸다. 비급여를 제외하고는 개인부담금 500만 원 이상 부과하지 않는다고 설명해줬다. 중환자실에 있다 보니 비급여가 많아서 병원비로 830만 원가량을 지급했다. 나는 우리 담당과장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병원비에 대한 탕감이 어느 정도 있을 거로 기대했는데 이 과장은커녕 오히려 누나 아는 지인의 힘으로 10% 할인이 되었다고 한다.


병원비 결제를 마치고 내려와 장례식장 직원이 하라는 데로 간단히 술 올리고 절하고 앉아 있는데 염하는 직원이 와서 3시에 하기로 한 입관을 조금 미뤄야겠다고 했다. 시신이 너무 부어있어 물이 계속 나와 부위별로 감싸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도 많이 흔들리고 손상이 심해서 오래 걸린다고 했다. 너무 속상했다. 누나 얘기 들어보니 시신이 많이 부어 배를 꿰매지도 못했다고 하던데, 다리 쪽 하고 진물도 상당하다고 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점심을 먹고 입관하러 갔다. 삼배로 칭칭 감겨있는 모습이 얼마 전까지 살아 숨 쉬고 아프다고 얼굴 찌푸리던 그 사람이 맞나 모르겠다.






장례 2일 차 6월 25일 (목)


02:00

마지막 조문객까지 돌아갔다. 생각외로 많은 사람이 다녀가 고된 하루였다. 편도는 여전히 부었고 혓바늘마저 돋으려 하고 있다. 코 밑은 헐어서 꼴이 말이 아니다. 겨우 잠들었다.


09:10

원무과에서 직원이 왔다. 어제 병원비 결제했는데 과장이 원장에게 말해 병원에서 총 병원비의 50%를 D/C 해줬고 본인이 100만 원을 사비로 냈으니 다시 결제해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병원비는 미리 준비해놨었고 보험에서 보상받을 수 있으므로 받지 않고 싶었다. 그것으로 책임을 면피하려는 느낌이 들었고 우리가 그것을 받으면 나중에 소리 내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누나와 아내의 생각이 나와 달라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12:20

후배랑 휴게실에서 얘기하고 나오다 과장과 마주쳤다. 조문을 온 것이다. 그가 엄마에게 절을 하는데 내내 흐르지 않던 눈물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눈물을 삼키느라 고맙다는 말도… 원망스럽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내가 엄마를 떠올리면 이 사람은 항상 같이 생각날 것 같다.


서울에서 일하던 후배와 제자가 찾아오고 제주도에서 친구가 날아왔다. 수년간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아내와 누나, 자형의 주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장례 3일 차 6월 26일 (금)


발인하는 날이라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며칠째 계속되는 편도염에 이젠 입안도 헐기 시작했다. 코가 헐어 있는 것까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로를 풀 시간이 없으니 컨디션이 최악이다.


운구해주는 친구와 후배들이 관을 버스에 실었다. 모두가 앉아서 가는데 엄마는 꽁꽁 묶이고 관에 갇혀 누워서 가야 한다니, 정신없는 이틀을 보내며 잊었던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엄마가 그토록 기다리던 병원 밖으로의 탈출이다. 3개월 만에 드디어 병원을 벗어나게는 되었지만, 이젠 더 답답한 땅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엄마를 휠체어 태워 산책하면서 억지로라도 먹어 기운 내서 어서 걸어나가자고 얘기했었는데 이렇게 나가게 되다니 참담하고 참담하고 참담하다.


10시경 산소에 도착했다. 인부들이 땅을 파 놓았는데 생각보다 깊다. 엄마를 좋은 곳에 모시는 거지만, 얼마나 어둡고 답답할지 걱정이다. 부디 사후 세계가 있어 영혼은 하늘로 갔기를 바랄 뿐이다. 제를 지내고 엄마만 남겨두고 돌아왔다.


가족 친지들이 점심 후 뿔뿔이 흩어졌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는 잠이 들었고 나는 어질러진 집을 청소했다. 딸이 어린이집에서 올 시간에 맞춰 아내가 마중을 나갔고 나는 목욕탕에서 피로를 푼 뒤 집에서 몇 시간이나 잤다. 이제 엄마는 없지만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6월 27일 (토)


철거업자를 불러 엄마 집을 치웠다. 이제 엄마 집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배 아프다고 내게 전화했을 때 입원할 것을 직감한 엄마가 그 아픈 와중에도 집에 들러 칫솔이랑 수건을 챙겼었는데…. 훨체어를 타야만 움직일 수 있었던 엄마가 집에 한번 가보고 싶다 했을 때 내가 집은 무슨 집이냐고 병이나 나을 생각이나 하라 했는데 어느 날인가? 환자복 입고 휠체어 타고 누나와 집에 갔었던 모양이다. 그때 그렇게라도 갔던 것이 참 다행이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으니 말이다.


자꾸만 과장이 마음 편히 있을까 봐 걱정된다.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계속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깟 병원비 조금 할인해주고 내가 고마워할 거로 생각할까 봐 걱정이다. 그가 조문 왔을 때 진심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가 마음이 불편했으면 좋겠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병원을 옮기려 했을 때 과장이 붙잡았던 것이 원망스럽다. 그것은 어쩌면 그 과장의 욕심과 회피와 이기심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소변이 배출되지 않아 퉁퉁 부어 있었다. 신장의 기능 문제가 있었을 테지? 중환자에게 24시간 받는 투석이 왜 중요하고 우리가 받았던 짧은 투석이 위험한 것이었는지 뒤늦게서야 알았다. 과장은 진작 알고 있었을 테지?


엄마가 입원실에 있을 때 누나에게 과장한테 담배 두 보루 사다 주라고 했단다. 그래서 누나는 과장이 무슨 담배를 피우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들은 유언인가 보다.


잠시라도 딴생각할 틈이 생기면 엄마가 병실에 있었을 때와 마지막 부은 모습이 떠오르고 뒤이어 드레싱 한다고 주사기에 식염수 밀어 넣던 과장의 모습이 따라온다. 아쉬움과 분노가 애증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용서하지만, 돌이킬 수 없기에 이 병원과 과장에게 맡긴 나 자신은 용서되지 않는다.






6월 28일 (일)


편도염이 많이 가라앉았고 코 밑에 헐었던 피부도 거의 나았다. 오늘 누나네와 묘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러 산소에 다녀왔다. 엄마가 각종 소주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게 중에 한 병을 가지고 가서 뿌려주고 절을 올렸다. 앞으로 산소에 갈 때마다 한 병씩 가져가서 뿌리고 와야겠다.


집에 돌아와 병원에서 떼왔던 사망진단서와 입원확인서 등 서류를 살펴보았다. 직접 사인은 '다발성 장기부전' 다발성 장기부전의 원인은 패혈증성 쇼크와 범발성 혈관 내 응고이고 이것은 복막염과 패혈증, 급성신부전이 원인이 되었다고 되어 있다. 지금껏 우리가 겪어 온 것을 토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극심한 복통으로 입원, 게실염 천공 판정


2. 이틀 뒤 S상 결장 절제술, 처음 설명했던 대로 회장루 조성하지 않고 장 세척 후 대장-직장 문합술 시행, 사전 동의 없이 충수 절제


3. 한 달 동안 기다려 문합부 거의 아무는 상황 전개


4. PA인지 레지던트인지 가족들이 처음 보는 사람이 드레싱 할 때 주사기로 압력을 일순간 강하게 불어 놓은 후부터 문합부 누출 다시 심하게 발생.


5. 이후부터 계속 변이 새어 나와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자 회장루 조성술 하기로 함.


6. 회장루 조성술 하기 위해 개복하니 문합부 누출로 인해 염증이 많이 있었고 유착도 심해 유착 박리술까지 병행함.


7. 장루를 제대로 붙이지 못해 장루와 피부 사이로 변이 새어 나오고 담즙이 새어 나와 개복 부위와 복부 일대가 엉망이 됨


8. 3일 뒤 드레싱으로 고생하던 과장이 안쪽에서 새는 것 같다며 다시 수술한다고 함. 2차 수술 때 장 유착 박리하면서 소장에 천공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


9. 3차 수술 뒤 일주일가량 계속해서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남. 폐부종, 패혈증, 신부전 증상이 동시에 나타남. 


모든 것을 뒤집어 살펴보니 다시금 참담함을 느낀다. 내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동안 지켜본 바를 정리하니 억울함은 풀리지를 않는다.


담당의는 폐부종의 원인으로 수액을 많이 맞아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결국, 2차 수술을 빨리하지 않고 수액으로 한 달여를 보낸 것과 2, 3차 수술을 연이어 하면서 급격히 증가한 여러 링거가 원인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시간을 너무 끌었다. 패혈증은 혈액이 감염된 것인데 3차 수술 후 증상을 보였으니 수술방에서의 감염이나 장루를 제대로 붙이지 못해 변이 새어 나왔던 점, 소장 내에 천공으로 담즙 및 오물이 흘러나왔을 것으로 예상되니 그에 따른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수술에는 합병증이 따르기 마련이고 의사를 노력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최선의 선택과 최상의 의술이 아니었음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이것은 죽지 않아도 될 환자가 죽었다는 것이고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Posted by 솔파파 대류


S상결장에 게실염증 및 천공 / 대장 문합부 누출 / 소장 천공


입원 58일 차 5월 21일 (목)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가 중환자실에 가기 위해 침대를 옮기고 있었다. 온몸이 벌벌 떨고 호흡이 상당히 강하게 몰아치고 있다. 엄마 눈빛에서 두려움을 봤다. 다시 못 보면 어쩌나 하는 눈빛이다. 엄마는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보호자는 밖에 대기다.


일주일은 족히 중환자실에 있지 싶다. 병실을 정리하란다. 짐이 제법 많다.


11:39

차를 가지고 왔고 짐을 가지고 3층 중환자실 앞에 대기하고 있다. 과장이 들어가서 상태를 살피고 있다. 과장과 대학병원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논의해봐야겠다.


11:45

과장이 나왔다. 장루나 내용물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라 했다. 엑스레이 찍었으니 결과 나오면 폐렴인지 패혈증인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폐렴이면 폐렴약 먹으면 되고 패혈증이면 항생제 치료 한다고 했다. 대학병원으로 옮기는 것에 관해 얘기하자 회의적이다. 레지던트들이나 만날 것이라고…. 


애초부터 대학병원 갔어야 하는 거였는데, 엄마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 같다.


12:00

짐을 차에 실어놓고 중환자실에 오니 마침 면회시간이다. 곧이어 과장이 들어왔다. 엑스레이를 보니 폐렴 같지는 않고 패혈증인 것 같단다. 폐에 수분이 가득하단다. 폐부종이란다. 항생제 투약하면서 드레싱을 수시로 하는 것이 치료법이란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한다. 들숨은 짧고 날숨이 상대적으로 길다. 뇌에 산소 공급이나 되겠나 싶다. 계속 "으~" 하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 데, 지난 밤새 그래서 병실 다른 환자들도 제대로 못 잤나 보다. 숨도 가쁘고 몸도 많이 떨려서 보고 있기가 안쓰럽다. 


면회하러 가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 같다. 불안하다. 당분간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촉각을 세우며 지낼 것 같다. 엄마가 위태로운 상황에 오니 어린 시절부터 쭉 떠오르며 엄마가 나를 위해 희생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가족을 위해 좋은 옷 한 벌 없었던 엄마. 자식들 모두 잘 커서 부족함 없이 살게 되었고 예쁘고 똑똑한 손자 손녀들까지 있는데 조금만 더 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


19:00

19시 조금 넘어 누나에게서 카톡이 왔다. 숨을 계속 잘 못 쉬면 장기들도 힘들어지고 그러다 장기가 작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게 심장이 되면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한단다. 인공호흡기를 할 때 의식이 뚜렷하면 의식을 떨어뜨려야 한단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인공호흡기 달면 환자도 보호자도 힘들어져 가족 중 인공호흡기를 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시 선택하라면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하는 글을 많았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나면 숨을 거둘 때까지는 함부로 벗기지 못하니 신중히 생각하라는 글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환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모르고 기약 없이 2년, 3년 호흡기에 연명하다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니 말이다.


누나에게 이 얘기를 해주니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해야 한단다. 인공호흡기를 하지 않으면 장기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꼴이니 말이다. 그래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내가 경솔한 생각을 했다. 고민할 필요 없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나가 다녀가고 곧바로 아내도 병원에 갔었다고 한다. 눈은 조금 뜨고 있는데, 반응이 없었단다.


23:30

일 마치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 일을 좀 하다 늦게 귀가했다. 종합소득세 신고도 오늘 밤에 다 해놓을 것이다. 언제 정신없이 뛰어다닐지 모르니 말이다.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이제 샤워하고 편안한 집에 가는데 엄마는 얼마나 무섭고 힘들지 떠올랐다. 이 아파트에 모두가 편안한 침대에서 밤을 보내고 있을 때 벌벌 떨리는 몸과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몰아치며 사투를 벌이고 있을 엄마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내일 12시 면회 시간에 기적처럼 앉아서 식사하는 엄마의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입원 59일 차 5월 22일 (금)


12:00

면회시간 누나와 함께 갔다. 호흡이 많이 좋아졌다.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힘겹게 눈을 뜨고 이내 감는다. 말을 걸어보면 고개를 움직이며 의사 표현을 하지만 귀찮은 듯 여러 번 물어야 반응을 보인다. 말은 아예 하지 못한다. 입이 너무 마르니까 간호사가 마스크를 씌워놓은 모양이다. 확실히 입이 덜 마른다.


과장과 면담을 했다. 엑스레이를 보여 주며 어제보다 폐부종이 나아졌고 염증 수치도 절반 정도 떨어진 것 같다. 패혈증이나 폐부종은 나아지고 있는데 신장 수치가 높아 급성신부전의 위험이 있단다. 온갖 위험한 합병증은 죄다 걸리니 답답하다. 나이도 있는데 장기간 입원해 있으며 면역력이 떨어졌는데 연달아 두 번이나 큰 수술을 했으니 몸이 버티지를 못하는 것 같다. 애초부터 예정된 대로 장루를 만들었다면 체력도 버티고 이미 완치되었을 시점일 텐데. 과장의 과실이 있음이다.


대학병원으로 옮기는 것에 관해 물었을 때 자기가 지금껏 치료해서 제일 잘 아니 자기가 보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한편으론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의 과실이나 처치가 드러나는 게 두려운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토, 일요일까지 직접 나와서 하루에도 두세 차례 직접 드레싱 하는 것이 고맙기는 하면서도 이 또한 자신의 과실을 만회하기 위함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엄마의 상태가 나빠질수록 신뢰는 떨어지고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19:00

누나랑 아내가 다녀왔는데 낮과 상태는 비슷하단다.






입원 60일 차 5월 23일 (토)


12:00

장인, 장모, 이모, 외삼촌이 오셨다. 이모가 엄마를 부르며 눈을 떠보라지만 눈을 뜨지 못하고 손을 잡으며 힘을 줘보라지만 손에 힘을 주지 못한다. 내가 눈꺼풀을 들어 올려 눈을 떠보라는데 눈에 초점이 없어 보이고 희미해 보인다. 숨 쉬는 것은 어제와 같이 부드럽지 않고 크게 쉰다. 간호사들은 열이 난다고 하는데 발이 차갑다. 중간중간 불편한지 다리를 움직이는 거로 봐선 의식은 있는듯한데 기력이 없어 반응을 안 보이는 것 같다.


간호사에게 신장 수치를 물으니 어제보다 또 올라갔다고 한다. 신장 기능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엑스레이 찍었느냐고 물으니 찍었고 기록에는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고 적혀있단다. 여러 합병증 중 일부는 호전되고 일부는 악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과장을 만나지 못해 잘 모르겠고 폐부종은 호전되고 패혈증은 잘 모르겠고 급성신부전의 위험은 증가하고 있는 듯하다.


30분간 면회를 마치고 나오니 이모가 의사 말은 다 거짓이고 안 되겠다고 한다. 누나랑 통화할 때 좀 나아졌다고 들었는데 이게 나아진 거냐고 했다. 자식인 우리가 모든 걸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 이모는 언니고 외삼촌은 동생이다. 부모 자식의 정만큼 형제의 정도 있음인데 우린 그런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18:30

누나와 엄마에게 갔다. 상태가 그대로다. 여전히 숨은 쉬는데 의식이 없거나 기력이 없어 보인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부르면 눈뜨고 고개를 흔드는 의사 표현도 했단다. 그나마 다행이다. 입을 계속 벌린 상태로 숨을 쉬니 입속과 입술이 마른다. 그래서 저녁에 있는 간호사는 마스크를 씌워준다. 낮에 왔을 때는 얘기를 해야 씌워주는데 저녁에 간호사는 더 친절하고 잘하는 것 같다.


면회시간 끝나고 과장이 좀 보자고 해서 상태를 설명해줬다. 패혈증은 잡혀가는 것 같고 수술 부위는 자기가 잘 관리하고 있고 다만 콩팥 수치가 많이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이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소변량인데 수치는 안 좋아도 소변량은 괜찮다고 했다. 희망이 없을 것으로 여겼는데 살짝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엄마가 우리가 부를 때 반응을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눈을 감고 계속 숨을 몰아치고 있는데 잠이 든 것인지 멍한 상태인지 움직일 수 없고 눈만 감고 있는 지옥 같은 버티기인지 알 수가 없다. 제발 그런 것이 아니기만을 바란다.






입원 61일 차 5월 24일 (일)


12:00

별다른 차도가 없다. 수치들의 변동도 없고 입으로 숨을 쉬어 입안이 마르고 혀가 말려있다.


18:30

누나가 볼일 보러 가서 혼자 면회했다. 입안이 너무 말라 있어 혀에 상처같이 염증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다. 비닐장갑 끼고 혀를 펴보기도 하고 억지로 물을 조금 떨어뜨려도 봤다. 사레들리듯 콜록거린다.


과장이 왔다. 엑스레이상 별 차이가 없고 염증 수치만 조금 떨어져 정상 범주에 들어왔다. 그래도 9.7 정도로 높은 편이다. 콩팥 크레아티닌 수치가 어제 2.4에서 2.6으로 많이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1.1 이하가 정상 범주이다. 낮에 수혈을 받았고 혈소판인가? 수치가 낮아 추가로 또 맞을 거란다.


낮에 두 번 드레싱 했고 지금 또 하고 밤에는 남자 간호사가 또 할 거라 했다. 오랜만에 드레싱 하는 걸 지켜봤다. 각종 호스와 오물을 받아내는 비닐 팩 등 엉망진창이다. 석션하는 호스가 복부 수술부위를 벌려놓은 곳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대체 저긴 언제 봉합하는 것인지…. 몸 한가운데 구멍을 통해 호스를 꽂아 오물을 빨아내고 있으니 징그럽고 그 부위가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드레싱 마치고 과장에게 입이 마르는 것을 얘기하니 입으로 숨을 쉬어 그렇단다. 그것으로 인해 다른 감염의 위험은 없느냐니까 가그린으로 자주 닦아주라고 하겠단다.


어제와 비교하면 수치는 큰 변화가 없고 시간이 계속 흐르면 체력이 떨어지니 수치가 그대로라면 오히려 마이너스 상황이 아니냐니까 하루하루 확 달라지긴 어렵고 시간을 갖고 기다리자는 식으로 얘기한다. 내일이면 입원한 지 두 달이다. 두 달 동안 제대로 먹은 적도 없고 고통만 받았는데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으니 막막하다.

Posted by 솔파파 대류